사람이 만듬/크리스마스
본질의 역사와 변질의 역사 [하나님의교회,안상홍하나님]
완두콩☆
2012. 6. 11. 16:14
본질의 역사와 변질의 역사
물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생명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바로 물이다. 그래서 인지 오늘날 대다수의 도시는 강을 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생명의 유지를 위해 강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면서 강과 물은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옆에만 지나가도 악취가 진동하고 썩어가는 강은 이젠 어느 도시건 쉽게 볼 수 있는 흉물이 되고 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물이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듯하다. 그렇지만 모든 물이 다 오염된 것은 아니다. 오염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의 근원지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곳은 산 속 깊이 솟아나오는 청정수인 것이다. 강의 상류는 깨끗한 청정수였으나 하류로 흘러내려오면서 더러운 이물질이 섞이고 오폐수가 여기저기서 유입되면서 본래의 깨끗한 결정은 더럽혀지고 결국 썩은 물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도심을 흐르는 냄새나는 물의 본질은 참으로 순수한 결정이였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을 강이라고 본다면 몇 급수쯤 될까? 사람들의 마음을 물로 본다면 이 시대는 아마도 물고기가 살지 못할 것이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보면 매일같이 악취가 진동하는 소식으로 가득하다. 사랑과 화합과 기쁨의 소식보다 타락한 사람들에 의해 오염된 사건사고가 오늘도 어김없이 조간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오염된 도시의 강들과 오늘날 인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본래의 순수한 결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모아져 강을 정화시킨다, 환경친화적인 과학으로 도심의 강을 회복시킨다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투자를 하고 있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 ,둘 회복되고 깨끗해지는 강들이 생겨나고 다. 그렇다면 오염된 이 세상은 어떻게 정화를 시킬 것인가?
모든 것은 생각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즉 타락한 세상, 타락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타락한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썩은 강을 정화시키는 타락한 생각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이 종교이고 신앙이다. 그중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인의 몫이며 사명이라고 성경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와 신도가 많아지면 세상은 깨끗해질까?
요즘 길을 걷다보면 쉽게 보이는 것이 교회이다. 그 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교회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미 참으로 많이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믿음과 사랑으로 정화되고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부패의 악취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왜 그럴까? 문제의 초점을 교회로 돌려보자. 신도와 공모하여 사기행각을 벌이다 붙잡힌 목사, 돈에 눈이 먼, 권력에 눈이 먼 목회자들과 신도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언론 미디어, 기독교 내외부에서 지탄과 원성의 소리가 높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의 타락이 수위를 넘어 범죄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순수한 결정을 가진 청정수이다. 그러나 교회들에게서 나는 악취는 깨끗한 물에 더러운 물질들이 유입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세상을 정화시키는 신앙인들의 정신을 먼저 정화시켜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의 크기는 갈수록 대형화되고 심지어 기업화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번성하고 발전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독교의 본질을 담고 있는 성경에는 이런 경고의 메시지가 있다. 호세아4:6 내 백성이 지식(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는 말과 같이 기독교의 타락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이다. 본래의 순수한 가르침을
변질시켜 썩게 만든 오염의 주범을 기독교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러한 모습을 명백히 보여준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는 이스라엘은 큰 축복을 얻었으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크나큰 재앙을 당한 적도 있다. 그 주 원인은 바로 우상숭배였다. 성경은 다른 신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비롯해서 이방의 다른 신을 섬기는 풍습을 들여오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신명기12:30) 이것에 가감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음식을 금하고 처방전에 따라줄 것을 부탁하듯 우리가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처방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우상숭배의식을 들여오는 교회? 과연 그곳에서 참다운 하나님의 음성이 전파되고 행해질 수 있을까? 상식적인 문제이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내부사정은 비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벗어난 교회는 세속화 되고 본질이 흐려지고 변질되고 만다. 법과 질서를 어기는 경찰은 그야말로 중무장한 범죄조직일뿐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스마스이다.
‘가장 기독교적인 것이 가장 이교적이다.’ 라는 말이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며 구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캐럴로 길거리가 가득 찬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도 교회에 한번쯤은 가보게 하는 크리스마스가 실제 예수님의 탄생이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변질된 역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만해도 유럽은 대부분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숭배대상인 태양신의 탄생일을 큰 축제로 여겼다. 이 날이 로마의 동지인 12월 25일이다. 유럽에 전래되면서 미트라교와 대립하게 된 기독교는 많은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해 그들에게 낯익은 것들을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때 태양신 탄생일인 12월 25일이 성경에도 근거 없는 예수님의 탄생일로 둔갑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예수탄생일은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로부터 뿌리를 둔 것이다. 만약 흰두교의소를 신성시하는 의식을 교회가 받다들인다면?
분명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게 되면 그들의 번성이 범죄가 되고 복을 받아서 번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이 넘쳐나게 될 것을 말이다.(호세아4:6) 인류 구원이라는 사명을 이루기는커녕 세상보다 더욱 빠르게 타락해가는 교회의 현주소, 그 원인은 바로 본질을 져버린 변질의 역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방인의 숭배사상과 의식을 교회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져버리는 것과 똑같다.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부터가 잘못되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보아야지 아무리 마지막 단추를 가지고 씨름한들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성경은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는 최상의 순수한 생명수가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 가르침을 세상과 타협하며 조금씩 변질시키고 말았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지어내고 진짜인척, 거룩한 척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물며 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며, 오히려 그것이 잘된 것처럼 포장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다. 순수한 결정에 넣어선 안 될 오염물질을 섞는다면 그 물은 더 이상 갈증을 풀어주고 생명을 소성시키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몸을 망치고 다른 것까지 썩게 하는 폐수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기보다 스스로를 망치고 타락을 앞다투어가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성경은 사람들의 의해 복음이 변질될 것을 수 없이 경고 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진실을 모른 체, 알고도 묵과한 체 이방사상과 사람의 가르침의 유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 종점은 저주라는 엄청난 재앙의 경고뿐이다.(갈라디아서1:6)
변질된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은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물이다. 언제까지 이를 방치할 것인가?
순수한 결정을 회복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한 진리의 변질을 지금 당장 막지 않는다면 썩은 물은 우리 영혼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세상은 변질의 역사와 가르침을 방관하지 않고 본질의 가르침을 따라서 진리를 정화하고 세상을 정화하는 지혜와 용단을 가진 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켜나가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해서는 안 될 것들을 과감히 개혁해 나가는 신앙인만이 맑고 깨끗한 생명수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